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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빈익빈부익부
내가 처음 산 기타는 빨간색이라고도 주황색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야시꾸리한 색깔의 펜더 짝퉁인 필드였는데(멀리서 보면 비슷하게 보임), 사기 전에 쇼윈도 앞에서 거의 30일 가까이 침을 질질 흘리다가 용돈을 끌어모아 구입하고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밤에도 껴안고 잤기 때문에 생생히 기억하거니와, 가격은 이만오천원에서 깎은 이만삼천원이었다(넥스트 노래 중 <영원히> 가사에 나오는 그 기타인데, 가사에는 그냥 빨간색이라고 묘사되어 있다.ㅋㅋ). 그러나 막상 사고 보니 리치 블랙모어가 사용하는 흰색의 펜더 기타가 너무나 멋있어 보여서 기타 표면을 사포로 몽땅 긁어낸 후 흰색으로 래커 칠을 했더니 그 밑으로 빨간색이 훤히 비쳐 보여 다시 또 까만 칠을 했더니 그 밑으로 빨간색이 훤히 비쳐 보여 다시 또 까만 칠을 했다. 잘 말리려고 베란다에 기타를 내놓았는데,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아들의 정신 나간 짓거리에 성질이 난 우리 아버지가 기타를 뽀개서 동네 쓰레기통 옆에 던져놓은 것이었다. 쓰레기통 옆에 주저앉아 한 시간쯤 울었던 것 같은데, 나의 슬픔에 동조한 동네 쓰레기통 쥐들도 함께 울어주었다. 이상은 형편이 어려운 한 강북 소년의 기타에 대한 슬픈 이야기다. 한편, 이와는 대조적으로 강남 소년이었던 S모 기타리스트는 난생처럼 손에 넣은 기타가 진짜 펜더 스트래토캐스터였으며 처음 사용해본 앰프가 모든 록 기타리스트들의 꿈인 마셜 앰프였다고한다. 그래서 나는 유명 기타리스트 S모군을 한참 나이 먹은 뒤까지도 속으로 좀 싫어했다. 만약 우리 아버지도 은행 계좌에 백업쯤 쟁여두고 공장을 다섯 개쯤 굴리고 있었더라면 나에게 펜더 스트래토캐스터를 열대쯤은 사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주지 못하는 아버지들은 반대로 짜증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여유의 빈익빈부익부 랄까. 돈이란 참 무서운 것이다. 아마도 엄청 부자들은 아들내미가 기타를 치겠다고 얘기를 하면 굉장히 쿨하고 멋있는 아버지의 자세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뭐, 기타를 치고 싶다고? 크하하, 이 녀석이 역시 날 닮아서 재주가 많아요. 그래, 어디 앞장서봐라. 아빠가 직접 사주마. 이봐, 김기사. 차 준비하게. 그러고는 쿨한 아버지는 기타를 치겠다는 귀여운 아들내미를 자가용으로 태우고 악기 상가로 곧장 가서 가게 주인에게 물어볼 것이다. 여보쇼, 우리 아들이 기타를 치겠다는데 여기서 제일 좋은 기타 좀 꺼내보시오. 뭐라고? 네가 갖고 싶은 게 따로 있다고? 팬더? 그건 동물 이름 아니냐? 아, 그래? 기타야? 그래그래, 네 맘대로 한번 집어봐라. 그래, 앰프도 필요해? 여보쇼, 주인. 저기 있는 저 대문짝만한 걸로 하나 주쇼. 또 뭐가 필요하다고? 이펙터? 그래 사라, 사. 김기사. 트렁크에 몽땅 싣게. 쿨한 아버지는 좋아서 입이 찢어진 아들 녀석을 차에 태우고 오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 이녀석, 기타든 뭐든 일단 시작했으면 대한민국 최고, 아니 세계 최고가 돼야 하는 법이다. 알겠지? 껄껄껄. 자, 이제 형편이 무지하게 어려운 집으로 무대를 옮겨보자. 이 집 아버지는 기타를 치고 싶다는 아들 앞에서 쿨한 아버지가 되기는커녕 귓방망이부터 날린다. 이 미친놈, 지금 때가 어느 땐데 기타를 치겠다고 지X이야! 너 이놈아, 커서 도대체 뭐가 될래? 뭐, 딴따라가 돼? 그걸 해서 먹고살 수 있어? 이 자식이 아직 굶어보지 않아서 정신을 못 차렸어요. 야 이놈아,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덴데, 네가 기타나 띵까띵까 쳐서 밥이나 먹고 살아갈 수 있을것같아? 이 아비가 고생하는 꼴을 보면 공부나 죽어라 할 노릇이지, 무슨 턱도 없는 소릴 하는 거야! 기타를 손에 넣지지 못한 슬픈 소년은 귀방망이를 얻어맞은 데 더해, 쿨하지 않은 아버지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고생한 이야기를 보너스로 밤새도록 들어야 했다. 출처 : 마왕 신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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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나라의 앨리스
고3이 되면 흔히 부모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딱 올 한 해만 그저 죽었다고 생각하자꾸나." 그래서 대한민국은 해마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닌 '좀비'들이 무려 육십만이나 어기적어기적 거리를 걸어다니고 학교에 간다. 그런데 전형적인 B급 좀비 좀비 영화에서처럼 이들이 실제로 강시가 된다면 모르겠지만, 체온을 재보면 여전히 36.5도요, 심장은 쿵쾅쿵쾅 뛰고 있다. 팔팔한 청춘들을 순식간에 시체로 만들어놓은 이 미친 나라에서 선생들 또한 부모와 한패이기 마련이다. "너희는 공부하는 기계다." "대입 실패는 인생 낙오요, 대입 성공은 불행 끝 행복 시작이다." 그 분위기에서 손들고 벌떡 일어나 "선생님, 진정으로 올바르게 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따위의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했다간 돌아오는 것은 매뿐이요, 욕설은 양념이다. 거기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거리감은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라고 한마디 덧붙였다간 원산폭격 자세로 좆나게 맞으며 "머리에 똥만 든 새끼, 그딴 생각이나 하니 성적이 떨어지지. 대학교 가서 물어봐, 새끼야!" 등등의 소리를 듣게 되어 있다. 하긴 요즘 선생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학생이 어디 있겠냐마는. 해마다 입시철이 되면 찬바람 조올라 부는 가운데 학교 담벼락에 엿 붙여놓고 흐느끼듯 절규하듯 기도나 염불으 ㄹ외워대는 어머니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그다지 낯설지 않다. 그런데 그것이 내게는 왜 뜨거운 모정이라든가 끔찍한 자식 사랑으로 보이지 않고 단지 주접으로 보이는 걸까. 아니 도대체 무슨 놈의 종교를 믿길래 하느님 부처님이 시험 당락에 관여를 하며, 시험은 애가 치는데 왜 부모가 뜬금없이 울고불고 난리냔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주접스럽다. 그렇게 우리 아이 붙여달라고 비는 건 남의 집 자식 하나 떨어뜨려달라는 얘기 아닌가. 그런데 부모의 '지극히 헌신적인' 애정표현으로 포장되어 있는 이런 장면들에 불만을 표기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철저히 금기요, 천인공노할 일로 여겨진다. 하지만 나는 이미 전 국민에게 싸가지 없는 캐릭터로 인식된 지 좀 되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해도 상관이 없다. 집에 고3 수험생이 하나 생겼다고 거실에서 TV를 치우는 집도, 못지않게 참 주접스럽다. 다 저 잘되라고 하는 공부에 왜 나머지 식구들이 몽땅 죄인처럼 숨을 죽이고 살아야 하냔 말이다. 그리하여 일 년 임기의 황제로 임명된 '고3님'이 방문을 열고 "공부하는거 안 보여욧? 좀 조용히 하란 말이에욧!" 하고 팩팩 성질을 부리고, 나아가서는 패악질에 이르러도, 입시 대문에 스트레스가 쌓여 그러려니 하고 다들 넘어가준다. 딴 게 베지밀 가족이 아니다. 이런 게 바로 콩가루 집안이라는 거다. 자기들이 언제부터 시민의 발이었다고 아침부터 수험생을 실어나르는 경찰의 풍경도 세계적으로 희귀한 코미디 장면이요, 수능날만큼은 시험이 끝날 때까지 전 국민이 소음 발생을 자제하자는 분위기는 어떤 미친놈이 처음 만든 건지 모르겠다. 심지어는 비행기도 안 뜬단다. 아니, 제깟 놈들이 수능시험 보는 게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여기서 잠깐, 내가 지금 현시대에 맞지 않은 발언을 하고 있으며 부모의 온정을 왜곡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 분위기를 지나치게 시니컬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느끼는 분들에게 한마디만 하자. 일 년만 지나도 자기 인생의 10대 중요 사건 중 하나가 될 뿐인 대학 입시. 심지어 십 년이 지나면 인생의 100대 중요 사건 중에도 낄까 말까 한, 그저 많고 많은 시험들 중 하나의 대학 입시를 그토록 장중하고, 장대하며, 거창하고, 중요하며, 심각하고 또 심각하며, 무지무지 엄청난 일로 몰고 가는 이 사회 분위기가 해마다 청소년 수험생들을 자살로 몰고 가고, 그들의 청춘에 그늘을 드리우며,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시커먼 늪 속으로 그들을 떠민다. 출처 : 마왕 신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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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드디어 그 돌X가리가 일을 저지르고 말았구나....하고 중엉거렸다. 학교 곳곳은 황급히 나붙은 대자보 앞에서 무거운 표정으로 글을 응시하는 사람들과 격앙된 표정으로 토론을 벌이는 사람들, 어디론가 부산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교직원들로 뒤숭숭했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무거운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들이 엉켜있었고 내 소견이랄까 뭐랄까 하는 것으로 정리가 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예감할 수 있는 것은 이번 경우만큼은 말로만 끝나지는 않을 것이며 많든 적든 사람들이 움직일 경우 나 역시 행동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권력자들이 사람의 장막에 둘러싸여 민심을 읽지 못하는 것이 역사에서 흔한 행태라고는 하지만, 도대체 이 상황에서 호헌이라는게 뭔 소리냐고...돌X가리야, 넌 대가를 치를 거다. 나는 애ㅗ 하필 운 나쁘게 87학번이 되어 대학만 들어가면 딴따라나 실컷 하리라는 기대와 달리 의식화 교육이나 받고 짱돌이나 던져야 한단 말이냐. 게다가 저 돌X가리는 왜 날 좀 조용히 살게 내버려두질 않는 거냐. 알다시피 내가 다녔던 학교는 출석률 졸라 우수하고 취업률 끝내주는 걸로 버티는 학교다(정말 그런줄 모르고 들어온 거다). 근데도 1987년에는 거의 전교생이 길거리로 나갔으며 나 역시 과 룸에서 기타를 치고 있다가 선동대의 메가폰 소리가 들리면 아쉽게 악보를 접고 머리 숫자라도 채던 거다. 최루탄이 눈처럼 덮였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게, 실제로 우리는 데모가를 부르다가 중간에 가끔씩 "창밖을 보라. 흰 눈이 내린다" 하며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곤 했는데, 데모대와 전경 양쪽에서 폭소가 나왔었다. 여태껏 살면서 그런 초대형 용량의 뭐라 말할 수 없는 쓴웃음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애당초 난 우익에 대한 반감만큼이나 좌익에 대한 짜증도 많았다. 소위 철학과라는 곳이 짱돌 던지는 데 빠지지 않는 부류가 다니는 과라는 이미지가 강하긴 하지만, 첫 엠티 때부터 제헌의회'만이' 이 나라에 대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는 선배를 보고는 그 짜증이 폭발해버렸다. 그래서 고교 때 정치나 제도를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지만 그 방법'만이' 해결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더니 고교 때 세상에 무관심했다는 내 행동에 대한 비판을 또 졸라 늘어놓는 것이 아닌가. 흔히 말머리에 좀 겸손한 척하느라고 늘어놓는 말들을 그런가보다 하고 믿는 게 토론에 서투른 자들의 특징이다. 상대방이 하는 말의 본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거다. 나는 그저 그의 독선적인 논리 전개를 제지했을 뿐인데.... 고교생은 죄다 팔푼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하여간 당시에는 다수파이며 온건 좌익인 NL과 소수파인 과격 좌익 CA로 좌파를 크게 나눌 수 있었고 중도파는 왕따나 당하기 십상이었으며 더더군다나 우익은 매우 눈치를 보면서 학교를 다녀야 했다. 철학과는 극렬 CA 분자인 몇몇 선배들의 주도로 CA 경향이 상당히 강했는데, 어쨌거나 난 돌을 던질 때는 머리 숫자가 오방 많은 NL 진영을 쭉 지나쳐 몇몇이 모여 있는 CA 쪽에 가서 던졌다. 왜냐하면 NL은 최루탄이 한 방 터지거나 특히 백골단이 투입되면 나 살려라하고 도망가는 성향이 좀 있지만 숙련된 투사인 CA 계열은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질서정연하게 퇴각(?)하여 '달려가는' 사람의 숫자가 오히려 적었기 때문이다. 출처 : 마왕 신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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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왜곡은 우리도 한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라는 일본 영화가 있다. 교통사고로 팔십 분 이상 기억을 지속할 수 없는 수학자 박사의 집에 주인공의 어머니가 가정부로 취직하게 된다. 박사에게 '루트'라는 애칭으로 불리게 된 주인공은 박사가 가지고 있는 수학에 대한 무한한 애정에 감화를 받아 결국 수학 교사가 된다. 영화는 수학이라는 소재 말고도 가족이라든가 개인 간의 의사소통이라든가 하는 여러 영역을 건드리지만, 중요한 대사들은 역시 수학이라는 소재에서 뿌멍져나온다. 주인공의 애칭이 모든 숫자를 감싸주는 수학 기호 '루트'인 까닭에 박사가 그에게 친구들을 감싸주는 너그러운 사람이 되겠구나, 하고 이야기하는 것이라든가,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 나누어지는 소수의 고결함이라든가...아무튼 수학을 혐오하다 못해 증오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볼 수 없으리라 짐작했던 영화였으나, 이 영화를 보면서 수학의 아름다움에 동조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버렸다. 그러면서도 나는 한편으로 너무나 서글퍼졌다. 내 학창 시절을 통틀어서 어느 한 선생이라도 학문의 아름다움이라든가 그것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준 적이 있던가. 수학의 공식을 무조건 암기하기 이전에 '왜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지' 수학이 왜 아름다운지에 대해 박사에게서 배운 감동을 이제는 자신의 학생들에게 전달하고나 하는 루트 선생의 모습. 그것은 우리 교실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선생의 모습이다. 현실에서 우리는 마치 아무 의미 없는 주문을 중얼거리듯 공식을 암기해야 하고 그것을 해내지 못하면 매질을 당한다. 독자들도 익히 아는 지수라는 게 있다. 기억나는가, 지수와 로그의 악몽이. (적어도 나에게는) 정말 지겹고도 지겨운 더러운 학문, 그중에서도 짜증날 정도로 암호처럼 보이는 의미 없는 부호들. 나는 대학 진학 후 우연히 지수의 발명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사람들이 평소에 머릿속으로 다루는 숫자는 기껏해야 수천수만인데, 천문학의 발달로 인간의 의식이 우주로까지 확대되자 무한에 가까운 엄청나게 큰 덩어리의 숫자들을 쉽게 다룰 필요가 생겨났다. 그 해결책이 바로 지수라는 것이다. 뒤통수를 때리는 충격이었다. 내가 그 사실을 지수를 배울 당시에 알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뭐, 황홀해하면서 공부를 하지는 않았겠지만,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하는 허탈과 공허는 최소한으로 줄었으리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하다. 어째서 어른이라는 씹X끼들은 우리가 배우는 과목들의 존재 이유와 아름다움에 대해서 설명해주지 않았을까. 성공하기 위해, 아니 적어도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대학에 가야한다는 반복적인 중얼거림으로 시간을 낭비하게 할 뿐, 왜 그들은 시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역사의 장엄함에 대해서, 화학의 마술과도 같은 신비함에 대해서 단 한마디라도 설명해주려 들지 않았을까. 출처 : 마왕 신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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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민주 투사?
무한궤도 초창기 일인데 모 잡지사와 인터뷰를 했더랬다.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할 거냐 어떤 밴드를 좋아하느냐 등 신인에게 으레 하기 마련인 질문이 나왔고,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밴드들인 아시아, ELP, 핑크 플로이드 등의 이름들을 댔다. 게다가 좋아하는하지만 실절적으로는 감히 손대기도 힘든 핑크 플로이드의 이름에 이르러서는 다들 웃고 말았는데, '이 상황에서 어따 대고 핑크 플로이드의 이름을 감히...'하는 웃음이었다. 그만큼 핑크 플로이드나 예스 같은 경우는 이름을 부를 때도 상당히 존경 어린 어감으로 불러야 하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몇 주 뒤 기사가 나왔다. 첫머리에 나와 있는 큰 활자의 제목 왈, "우리를 핑크 플로이드와 비교하지 말라". 너무 오래전 일이라 사실 기사 제목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런 식의 문장이었고 기사를 본 전 멤버들의 얼굴은 처음엔 하얘졌다가 그다음엔 샛노란색으로 그다음엔 시뻘건색으로 계속 변해갔다. 처음에 얼굴이 하얘진 것은 제목을 본후의 황당함이고 노란색은 과연 친구들과 팬들이 얼마나 우리를 건방지고 정신 나간놈들로 볼 것인가에 대한 아찔함이며 시뻘건색은 우리가 한 말의 의도와 완전히 상관없이 왜곡된 기사에 대한 분노였다. 너무 화가 나서 일주일 가까이 팀 연습이 엉망이 될 지경이였는데, 아마도 기자 양반 생각엔 그런 식의 제목이 우리를 꽤나 띄어주는거라고 생각했나보다. 하지만, 내 생각엔 그 기자 양반이 핑플(핑크 플로이드의 약자. 핑클이 아님)의 공연 비디오나 노래를 한 번도 듣고 보질 않았던 것 아닌가 싶다. '언젠가 핑크 플로이드처럼 되고 싶어요'해도 가갈갈갈 웃을 판에 심지어는 저희가 더 낫다고 개긴 셈이 되었으니....아마 딴 신인 밴드가 그렇게 인터뷰를 하고 내가 그 기사를 보았으면 난 피식 웃은 후 기사 내용은 보지도 않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에피소드는 너무 많지만 기억나는 것 중에 또하나. 데뷔를 하고 꽤 시간이 흐른 뒤에 한 기자 양반이 이런 질문을 했다. "당신의 인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무 광범위한 질문이라 대답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인터뷰이'의 입장에서는 별로 좋아하는 유의 질문이 아니다. 꼭 대답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질문을 하는 인터뷰어들이 또 꼭 대답이 너무 길어 정리하기 힘드네 하고 불평을 한다. 그러고는 그 흔한 카세트 녹음기 하나 안가져오고 대충 임의대로 '정리'하고는 나중에 전화해서 추가 인터뷰를 요청한다. 죽을 맛이다). 하여간 내 대답은 이랬다. "뭐....행복한 편이죠. 아티스트의 삶에서 다양한 경험을 직접 해볼 수 있다는 건 매우 축복인데, 잘살았다가 못살았다가 가정 기복도 심했고, 잘사는 놈, 못사는 놈, 열심히 사는 놈, 게으른 놈, 막가는 놈 다양한 친구들도 만났고, 불과 몇 개월이었지만 군대 생활도 했고 또 불과 몇 개월이지만 감옥 경험도 창작엔 결국 도움이 되었던 것 같고, 학교에선 운 나쁘게 87학번이라 그냥 돌도 몇 번 던져봤고, 그러다 딴따라라고 따가운 눈초리도 받고..." 한마디로 얘기해서 수박 겉핥기라도 상당히 버라이어티한 거 같아서 기쁘다는 얘기였는데, 몇 주 후 기사가 나왔다. 제목 "나는 민주 투사였다." ....씨X 출처 : 마왕 신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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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철이의 추천 도서 25선
나는 책이 좋다. 졸라 좋다. 웬만한 여자보다 좋다. 일단 얘는 내가 진도를 건너뛰자고 요구해도 저항하지 않으며, 과거를 들춰내도 언제나 명확하고(그렇다고 내가 여자들의 과거를 따진다는건 절대 아니다), 다른 일로 바빠서 팽개쳐놓아도 잔소리를 하지 않으며, 여러 개를 수집해도 질투하지 않고, 침을 찍찍 발라도 눈을 흘기지 않으며, 데이트 비용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다. 일부 특수 도서들은 제본 특성상 사진 자료상 매우 비싼데, 결정적으로 이런 종류는 말만 잘하면 친구가 빌려준다.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은 책을 빌리는 건 괜찮지만 빌려주면 거의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책이 좋다. 오방 좋다. 좋아하는 순서는 1.공상과학(이제는 이 단어가 촌스러운 느낌을 주나 sci-fi라는 단어가 좋겠다) 소설 2. 비슷한 얘기일 수 있지만 판타지 소설 3.역사와 관련된 이러저러한 종류, 4.종교 특히 사이비종교 관련 서적, 5. 요리책 등등이고, 당연히 이 모든 것에 앞서는 영순위로 만화가 빠지지 않는다. 싫어하는 순서는 1.추리(성격이 급해서 맨 뒷장부터 먼저 본다. 그리고 나는 이미 범인을 알고 있으므로, 탐정을 오방 비웃으며 삐융신~ 냐하하하하....하면서 본다. 재미있을리가 없다) 2. 애정물(온몸이 가렵고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부작용 때문에 못본다), 3. 명작 및 수준 높은 문학작품들(잔다), 4.종류 불문하고 세로쓰기로 된 책들. 근데 웃긴 것은, 전 세계에서 독서율이 매우 낮은 축에 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꼭 누가 책 좋아한다고 하면 잘난 체한다고 욕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친구랑 지난주에 읽은 감명 깊은 책 얘기 좀 할라치면 꼭 연예인 스캔들 얘기나 끄집어낸다. 나 초창기에 취미가 독서라고 했다가 잘난 척한다고 욕먹고 열받아서, 나는 잘난척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잘났다고 떠들고 다녔다. 씨x, 책 보는게 어때서... 이야기는 어린 시절로 거슬러올라간다. 다섯 살 때쯤, '조기교육'이라는 말이 있기도 전에 나는 떠듬떠듬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는데, 세 명의 삼촌과 여섯 명의 고모, 그리고 엄마가 장난삼아 한 글자씩 가르쳐준 게, 워낙 선생이 많다보니 결국 애가 글을 읽더란다. 그러다가 국민학교 2학년 때쯤 집안에 엄마 책(전부 세로쓰기)만 빼놓고는 읽을 책이 없어져버려서 하는 수 없이 스탕달이나 헤세니 하는 걸 읽게 되었는데 이건 글자만 읽을 뿐이지 의미와 비유를 이해할 수 없으니...결국 백과사전으로 새어버렸다(엄마의 문학책 중에서도 야한 장면은 전부 찾아 읽었다, 세로쓰기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내 나이 10세 이전. 장래가 훤했다고 볼 수 있다). 출처 : 마왕 신해철